우연히 책장에 있어 보게된 소설 쇼코의 미소
원래는 읽지 않으려다 읽은 것이라 안 봤으면 어쩔뻔 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더 찾아봐야 겠다는 생각도 든다. 쇼코의 미소는 단편소설이 묶여 있는 책이다. 그 중 작가의 당선 소설인 쇼코의 미소라는 중편 소설이 이 책의 제목이다.
줄거리는 일본에서 견학 온 쇼코와 한국의 소유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소유는 학교에서 영어로 말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학생 중 하나였고 그 이유로 쇼코가 소유의 집에 묶게 된다. 할아버지, 엄마와 사는 소유는 쇼코가 와서 반갑게 맞이하고 활짝 웃는 엄마와 할아버지를 어색해 한다.
실제 가족들이 사는 모습은 그런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밥 먹을 때도 TV만 보며 대화하지 않던 가족이다. 할아버지는 일본어를 할 줄 알아서 쇼코와 대화를 많이 하는데 나중에는 서로 펜팔친구가 되기도 한다. 무뚝뚝한 할아버지는 쇼코에게 소유와 관련된 웃긴이야기도 하며 소유가 알던 모습과 다르다.
엄마와 할아버지를 작동하지 않아 해마다 먼지가 쌓이고 색이 바래가는 괘종시계 같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다.
변화할 의지도, 아무런 목표도 없이 그저 그 자리에서 멈춰버린 사람들 이라고.
나도 주변 어른들에 대해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꼰대고 생각이 굳혀져 버린 사람들, 변화하려 하지 않고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솔직히 싫어했다. 당사자들은 아닐텐데 말이다.
그들도 나름의 목표나 변화를 겪으며 잘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일본으로 돌아간 쇼코는 할아버지에겐 밝은 내용의 편지를, 소유에게는 어두운 이야기로 편지를 보낸다. 쇼코의 모순된 말에 혼란을 느끼지만 둘다 사실 진실이었다.
모든 이야기가 사실이든 허구든 할아버지에겐 편지에서 보이듯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기도, 소유에게 쓴 편지처럼 자신을 포함한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겐 복수하고 싶었겠지
사람은 누구나 어두운 부분도 밝은 부분도 있기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어느 사람에 대해서 다 알 수 없다.
사람들은 서로를 속단하며 스스로 상처를 받는다. 속단은 오해가 되고 그 마음은 나를 찌르는 칼이 된다.
"네가 그리웠어" 나는 쇼코가 조금 미워져서 나도 네가 보고 싶었다고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리웠다는 그 말에 눈물이 났다.
어떤 연애는 우정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 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다. 사실 쇼코는 아무 사람도 아니었다. 당장 쇼코를 잃어버린다 해도 내 일상이 달라질 수는 없었다.
........(중략) 쇼코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쇼코에게 내가 어떤 의미이기를 바랐다. 쇼코가 내게 편지를 하지 않을 무렵부터 느꼈던 이상한 공허함, 쇼코에게 잊히지 않기를 바라는 정신적인 허영심
나는 이 부분에서 정말 감명이 깊었다. 글로 쓰거나 생각으로 정리한 적은 없지만 이런 감정을 나도 느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이성이든 동성이든 사람의 관계에서는 사랑과 우정이라는 감정이 있고 정확히 경계를 지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어떤 시절 그 누구와 사랑을 했었다. 모르고 지났을 수도 있지만. 소유는 쇼코가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면서 공허함을 느끼기도 하고 자신을 잊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허영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나도 참 허영심이 많은 사람인 것 같다. 나는 상대에게 크게 느껴지는 사람이길 바란다.
마음 한 쪽이 부서져버린 한 인간을 보며 나는 무슨 일인지 이상한 우월감에 휩싸였다.
"나는 네가 네 고향에서 살 줄은 몰랐어 그것도 할아버지의 간병 때문이라니 너답지 않다. 삼일에 한번은 할아버지와 병원에 가야 한다지? 투석은 정말 힘든거라고 하던데. 당사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나는 네가 네 할아버지를 그만큼이나 아끼는 줄은 몰랐어."
"그래, 나는 겁쟁이야."
" 난 네가 누군지도 몰라, 넌 누구니?" 쇼코는 죽은 물고기처럼 마루기둥에 머리를 기대고 약간 입을 벌린채로 무표정하게 나를 바라본다.
소유는 안 되는 줄 알면서 쇼코의 상황을 마음대로 재단하고 평가했다. 상처주는 말인줄 알면서도 마구 내뱉었다. 그 말에 쇼코는 "나는 겁쟁이야." 라고 무덤덤 하게 말한다. 그리고 넌 누구냐며 묻는다.
어느 사람이 누군지 누가 알까? 아무리 가까운 사람도 그 사람의 전체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상대에게 어떤 우월감도 꽤뚫어보는 듯한 시선도 가지면 안 된다. 각자 그마다 사정이 있다.
당시 나는 쇼코가 너무 쉬운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했다. 스물 세살에 벌써 직업을 정하고 태어난 소읍에서 떠나지 못 한다는 건 형편없는 선택이라고, 그때만 해도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삶을 살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나는 비겁하게도 현실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마음 속으로 비웃었다. 그런 이상한 오만으로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 버렸지만, 그때는 나의 삶이 속물적이고 답답한 쇼코의 삶과는 전혀 다른, 자유롭고 하나하나가 생생한 삶이 되리라고 믿었던 것 같다.
소유는 쇼코의 삶을 별로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쇼코는 아픈 환자이고 자신은 재미있는 대학생활을 하는 학생이었다. 나도 사실 이렇게 생각한 적이 많다. 남들은 왜 그렇게 답답하고 바보같이 사는지 왜 박차고 나오지 못 하는지에 대한 답답함 말이다. 그 사람의 삶을 산 것도 아니면서 선을 넘은 생각이다. 하지만 나는 매일 선을 넘고 있다.
꿈, 그것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같은 더러운 마음들을 뒤집어 쓴 얼룩덜룩한 허울에 불과 했다. 꼬인 혀로 영화없이는 살 수 없어 영화는 절실해, 같은 말들을 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 욕망의 비린내를 맡았다. 내 욕망이 그들보다 더 컷으면 컸지 결코 더 작지 않았지만 나는 마치 이 일이 절실하지 않은 것처럼 연기했다.
이 문구에서 내가 가진 원하는 것들은 정말 허울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100%는 아니지만 지금 내가 이루려고 하는 것들은 허영심, 공명심, 인정욕구, 복수심 모두가 버무려져 있는 듯 하다. 하지만 알면서도 계속 바라는 것이 꿈 아니던가, 못 이루면 허울, 이루면 현실이다. 사람들은 내 꿈은 현실이 될 것이라고 누구나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렇지는 않다.
영화에 대한 꿈을 이루지 못 한 소유는 이렇게 말한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만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 먹어 간다.
나이 먹어가며 느끼는 것은 즐기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의 손재주나 어떤 암기 능력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재능있는 사람이 처한 환경, 부모, 재력, 인맥 등이 그의 재능을 북돋아 주고 지속가능하게 해준다. 한 인간이 가진 자원은 태어날 때 부터 정해져 있고 자신이 가진 자원을 어떻게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인생은 달라진다. 자원이 없으면 쉽게 고갈된다. 인정하기 어렵지만 허울을 잡는 순간 정말 삶은 힘들어 진다. 꿈 만으로는 꿈을 이룰 수 없다. 각자의 자원은 다르다.
직장에 나간 엄마대신 나를 업어 키운 그였다. 그의 돌봄으로 뼈와 살이 아물었고 피가 돌았다. 효도는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말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나는 할아버지에 대한 부채감을 느꼈었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나는 그에게 해준 것이 없었다. 그래서 그에게 더 등을 돌리려고 했는지도 몰랐다. 가끔씩 할아버지에게 전화가 오면 받지 않거나 건성으로 받곤 했다. 할아버지는 늘 그자리에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내 상황이 나아지고 자리를 잡아서 떳떴해져야 한다고만 생각했었다.
어른이 된 나는 다른이의 힘듦과 피로 만들어진 존재인데 나혼자 잘 된 마냥 거만하게 굴었던가 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피와 땀이니 더욱 겸손해져야 한다.
"다음에 갈게, 그래야 또 올 이유가 생기지."
뭔가 여운이 남는 말이었다. 항상 이런 태도로 사는게 맞지않나 라는 마음도 든다. 항상 모든 것을 끝을 보려는 태도는 나 자신을 힘들게 한다.
<전체정리>
소설의 맨 처음에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차가운 모레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언제가는 바다를 떠나서, 사방을 둘러봐도 빌딩밖에 없는 도시에 가서 살 거야."
나도 바닷가에 가면 우주 저 멀리서 바다 맨 끝에 있는 나를 보는 시선을 상상해본다. 이렇게 끝에 있다니 신기하고 이런 끝인 바닷가에서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해 봤다. 답답할까 속이 뻥 뚫릴까? 잠시 생각하고 다시 바다를 좋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다. 쇼코는 자신이 가장자리처럼 밀려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쇼코가 소유의 집에서 지내던 시절 동네의 천변에서 이야기를 하다가 영어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적기에 쇼코에게 호감을 표현하고 싶어서 쇼코의 팔짱을 낀다. 쇼코는 당황해하는데 동성애자 인 줄 알고 놀랐던 것 같다. 소유는 성적으로 관심이 없으며 팔짱 끼는 건 친구들 사이에서 허물없이 할 수 있는 스킨십이라고 말해준다. 후에 소유가 쇼코의 집에 놀러갔을 때 쇼코가 소유의 팔짱을 낀다. 그때 소유는 소름돋아 한다. 17살의 소유는 먼저 팔짱을 꼈는데 대학생의 소유는 소름끼쳐한다. 소유는 쇼코가 어디로 떠나지도 못 하면서도 박혀버린 삶을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의 맨얼굴을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하지 않았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쇼코를 다시 보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나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상대의 힘든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들어 만남을 피하고 혼자 죄책감에 빠진 적도 있다. 그리고 그의 삶과 내 삶을 재단하고 그래도 내가 더 낫다.라며 쓸데없는 위로를 하기도 한다. 그러면 안 되는데 말이다.
쇼코와 소유는 할아버지와 산다는 공통점이 있다. 쇼코는 할아버지가 사준 옷을 버리기도 하고 할아버지를 떠나고 싶어한다. 소유는 할아버지가 자기에게 껌한통 사준적 없다고 말한다. 둘 다 할아버지를 안 좋아하지만 결국 나중에 보면 할아버지에게 의지하며 세상을 살아 온 존재들이다. 소설에서는 할아버지지만 우리는 흔히 할머니와 이런모습의 삶을 살기도 한다. 나도 우리 할머니를 생각해봤다. 항상 그자리에 있는 것 같지만 언젠가 떠날지도 모르는 우리 할머니에게 자주 더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쇼코는 소유에게 "너처럼 영화 좋아하는 애는 처음 봤어. 어쩌면 넌 영화 만드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겠다." 라는 말을 하고 소유는 정말 영화에 관련된 일을 하게 된다.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하지만 말이다. 살면서 누군가 나에게 한 지나가는 말이 인생의 방향을 바꾼적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그 결과가 좋지 않다고 생각 될 때 내가 한 선택인데도 그를 떠올리며 살짝 원망하기도 한다. 소유는 영화일을 하면서 그런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든다.
너무 글이 길어져 마무리를 해야겠다. 쇼코의 미소는 내가 그동안 읽었던 단편소설 중에 기억하고 싶은 문장이 가장 많은 소설이다. 독서노트에 무작정 적어놓았는데 나중에 읽었을 때 잘 기억이 날지 모르겠다. 옆에 두고 계속계속 읽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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