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화자인 주영이네 옆집에는 칠곡에서 이사 온 효진이네가 산다. 나이도 동갑이고 같은 여자인 효진이와 친하게 지내게 된다.
효진이네는 한달에 한 번은 꼭 제사를 지내는데 활짝 열어놓은 현관문으로 남자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뒤축이 구겨진 구두들이 벌여져 있다.
예가 있는 척 권위 있는 척하지만 구두를 구겨신고 떠들기만 한다고 생각했다.
주영이는 효진이네가 제사 지내는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고조할아버지 윗대를 기리는 제사다.
참 쓸데없는 짓인 것을 아니까 이런 일을 여자에게 시킨다. 그리 중요하면 그들 자손인 남성들이 제사를 지내면 될텐데 왜 합리적이지 못 할까
여자들만 땀 흘리며 일하고 남자들이 먹을 상을 준비하고 남자들은 선풍기 바람 쐬고 검은 정장을 입고 있다. 제사가 시작되면 엄숙한 표정을 지엇고 부엌에 있던 여자들도 하던 일을 멈추고 남자들의 모습을 지켜본다.
남자들의 정장 바지는 엉덩이 부분이 반들반들하고 양말은 뒤꿈치가 닳아있거나 회색발가락 양말 등 가지각색이다.
누구나 어렸을 때 봤던 모습이다. 남의 집안 사람인 여자들만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고, 남자들은 tv를 보며 앉아있는다.
효진의 오빠 기준은 열세 살 인데 제사 때 남자들과 같이 제사를 지낸다. 그리고 효진이를 팬다.
나도 학창시절 오빠들이 괴롭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유도 없고 단지 그들보다 약한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맞고 집에서는 그걸 눈감아준다. 남자니까, 오빠니까, 여자애보고 참으라고 한다.
나는 그런 친구들한테 오늘은 꼭 집에가서 소리지르고 화내고 가족보는 앞에서 물건을 부숴버리고 오빠를 때리라고 했다. 그렇게 한 친구들은 그 이후에 괴롭힘을 덜 당했다.
"아 잡겠다. 적당히 해라."
효진이 아빠가 심드렁하게 말했다. 효진이의 부모는 거실에서 코미디 프로를 보고 웃었다.
효진이가 나중에 효진이 아빠가 누군가에게 맞을 때 상관하지 않고 꼭 코미디 프로를 보고 웃을 일이 있었으면 한다.
"내, 맞구 산다꼬, 말하지 말란 말이다." 나는 풀 죽은 강아지처럼 효진이 곁을 떠나지 못했다.
학교에서 효진이는 가장 똑똑한 아이였다. 월말고사를 보면 올백을 맞거나 한두 개를 틀리는 정도였다.
"가스나라 공불 잘하면 뭐에 씁니꺼. 계집아들은 살림 밑천이라 조신하게 있다 돈이나 벌고 시집이나 잘 가면 다행 아닙니꺼. 쓸데없어예. 아 헛꿈 꾸지 말그로 그런 말씀 마시이소."
주영이 엄마가 한 칭찬에 효진이 엄마는 이렇게 말한다. 효진이 엄마는 그동안 살면서 대체 어떤 정도의 여성혐오를 호되게 당하고 살았길래 이런 사람이 되었을까..
내가 있는데도 효진이를 위협하고 자신의 엄마를 함부로 대하는 태도에서 나를 향한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져서였다. 그의 공격성에는 일종의 징그러움이 있었다.
"일종의 징그러움" 이라는 말이 왜이리 와 닿았는지, 살아오면서 이런 종류의 감정을 느껴본적이 있다.
한번은 집으로 돌아가는 길가에서 기준을 본 적이 있었다. 친구들의 장난에 수줍은 미소로 몸을 사리는 모습이 선해 보였고, 기본적으로 배열이 잘된 이목구비가 호감 가는 인상을 줬다.(중략)저 선량한 얼굴로 집에 들어가서 엄마와 동생에게 폭언을 하고 자기 마음 내킬 때마다 동생을 때린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이해할 수 없고 할 필요도 없는 일들은 여자들은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해본다. 어디 선량한 얼굴로 악마같은 폭력성을 지닌 사람들이 지금 세상에도 한둘이겠는가, 소설이 너무 사실적이라 슬픈소설이다.
"너가 착하게 굴어야지 엄마가 아들을 낳지." 효진이 할머니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효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왜 엄마가 아들을 낳지 못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또 그 이유가 여자인 효진이어야 했으며 왜 이런 말같지도 않은 말을 여성이 하고, 여성이 듣고, 여성을 탓하는 미개한 세상이었을까
작은 숙모는 딸을 둘 낳고 결혼 칠 년만에 아들을 출산했다.
"자꾸 여자애가 들어서더래. 그래서 계속 지웠다나봐. 응. 두 번 지웠대. 그렇게까지 해서라도 대를 이어야 했다고 말하는 거야. .."
90년대생 여성은 살아남았다. 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여아낙태가 많던 시절이다. 내가 어릴 때 어린귀로 듣었던 이야기가 생각이 난다. 내친구네는 언니와 내친구 이렇게 딸 둘인데 4살 정도 터울로 셋째가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그 전에 여아라는 이유로 낙태했었다.
효진이를 마구 때리는 기준을 저지하기 위해서 기준의 로봇을 부수어버린 효진은 엄마에게 혼이 난다.
"남의 집 일에 나서는 거 아니야."
"네가 나선다고 뭐가 달라져?"
"넌 여자애야."
엄마가 로봇을 부순 것에 대한 보상을 했다는 말을 들었다. 나는 깊은 죄책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옳을 일을 배운대로 하면서 살아도 죄책감을 느끼게 되는 여자들의 살아가는 환경이다. 나대지말아야 한다는 것은 언어적, 비언어적으로도 항상 여성들에게 메세지를 보낸다.
엄마는 오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그것이 임신을 위한 퇴사였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 친척들에게 들어 알았다.
에미가 되어서 돈 번다고 애를 방치한다는 말을 듣던 엄마는 막상 관두고서는 남편 잘 만나 집에서 속 편하게 노는 여자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여성은 존재만으로도 하루하루 혐오를 당하고 욕을 먹는다. 나도 예전에 회사에서 내가 존재하고 있고, 여성이라 괴롭힘을 당하고 있구나 라는 것을 느낀 적이 있다. 아무리 괴롭힘의 이유를 찾아보려 했지만 결말은 그거였다. 그 인간은 자신의 딸에 대해 이야기 할 때도 여성혐오인지도 모르고 말을 뱉어내기 일쑤였다. 그 사람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여성혐오를 당했길래 그렇게 여성비하에 앞장섰던 걸까.
나는 내가 효진이와 전혀 다른 사람이라고 오래도록 생각해왔다. 그애가 처한 상황을 보며 그런 집에서 태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기도 했고, 그애가 자기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모습에 반감을 느끼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그애보다 나은 처지라는 것을 스스로에게 확인하기를 원했다.
나도 남자형제가 없는 내 삶이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이 세상이 나를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살았을 확률은 0%다. 다행이다.
내 동생도 아무렇지 않게, 너희 언니가 남자였다면 너는 안 태어났을 거야. 라는 말을 듣고 살았다. 아빠는 내 동생이 태어나자 여자라 인상을 썼다고 한다. 그 때는 내가 남자인게 아니라서 동생이 태어난 것이니 우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말을 해서는 안 되는 말이다. 생각해서도 안 되는 생각이다.
그 유명한 90년생 백마띠라고 불리는 그 해 여자가 기가 쎄다는 90년생 백마띠, 그들은 살아남았다.이 모든 일은 90년생에게만 해당 되는 일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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